이지애의 블로그

BlogsRelationships in the time of hyper-connected society

2017.05.23 18:55

우리는 왜 기술에는 점차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서로에게는 덜 기대하게 되었는가? / 셰리 터클 <외로워지는 사람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 보다 ‘연결’되어 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모두 연결된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는 우리 사회를 규정짓는 표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렇게 연결로 가득 찬 사회에서 실제 인간 간의 연결의 질, 다시 말해 인간 관계의 질은 더욱 풍성해졌을까? 심리학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네트워크로 둘러 쌓인 환경에서 ‘묶인 자아(the tethered self)’가 된 개인의 인간성은 오히려 불안정한 고립 상태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는 저서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을 통해 기술이 인간이 경험하는 방식에 가져온 변화를 훑어보며 기술과 인간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몇 년 전 이 책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책의 영문판에 적힌 부제 때문이었다. 우리는 왜 기술에는 점차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서로에게는 덜 기대하게 되었는가? (Why we expect more from technology and less from each other.)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기술이 얼굴을 마주하고 접촉하는 관계 맺기의 방식을 변화시킬 때 우리 자신은 어떻게 변하게 될지를 들여다 본다. 여기서 저자가 가치를 두는 관계는 ‘친밀하고 진정성에 기반을 둔’ 그것이다. 진정성이란, 태어나고, 가족을 가지고, 죽음이라는 상실감을 아는 등 ‘인간적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상처 없는 제한적인 관계를 꿈꾸는 인간의 특성은, 관계에서 겪을 수 있는 실망과 위험들을 기술이 제공하는 ‘외로움을 가시게 해줄 위험 없는 관계, 안전하고 예상 가능한 친구’라는 환상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기술은 그 행위 유도성이 이러한 인간의 약점과 만날 때 더욱 매력적이다. 네트워크화된 디지털 연결망과 사교 로봇이라는 기술 또한 이러한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새로운 연결성과 불안

인간은 기본적으로 단절을 두려워한다. 연락이 닿을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것이라는 환상은 비단 책 속에 등장하는 줄리아의 것만은 아니다. 단절에 대한 불안감은 항상 휴대폰을 소지하고, 소셜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는 등 지속적인 연결을 통해 언뜻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온라인 속의 관계 연결성은 이런 것을 극대화 한다. 마음 속 소망하는 바로 그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판타지, 상대방이 떠날 이유가 절대 없으리라는 것이 보장되는 것. 이러한 관계의 안정성이 온라인 채팅에서 비롯된 인터넷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이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판타지 속에서 위로를 찾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스토킹과 감시, 프라이버시 등의 문제점이 야기되는 것을 알면서도 감수한다.

인터넷 공간은 내가 통제할 수 있고 언제든지 숨을 수 있는 자유 구역이라는 기분을 들게 하지만, 사실 영원히 기록되며 감시 당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전자 메시징, 데이터의 역설이다. 우리는 스크린을 우리가 소유한다고 생각하고, 이 공간에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언제나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공적이고 영원하며, 인터넷은 데이터로 모든 흔적을 기록한다. 이러한 디지털 기억은 항시성에 대한 불안감이라는 새로운 자기 감시 체계를 작동하게끔 한다. 나의 의도와 달리 노출된 사생활, 해킹 당한 계정에 대한 해명은 모두 자신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러한 작동 체계에서 대처 방법은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며 ‘착하게 지내는 것’뿐이다. 물리적 우편물에 손을 대면 범죄라는 것이 명백하지만, 누군가 나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해킹하는 것, 나의 데이터를 소유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판단과 처리에 있어 확신을 갖지 못한다.


고독 속 새로운 친밀감

네트워크화된 디지털 연결망에서 인간관계가 처리 되는 것과 같이, 사교 로봇은 ‘친밀성’이라는 것을 우회하여 처리한다.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실망하거나 소외를 당해도, 사랑을 흉내 내도록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 곁에 있어줄 거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얻는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생, 연애, 우정, 이것은 낭만적 반동의 성역이었다. 낭만적 반동은 사람만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중요시 했다. 오직 사람만이 거기에 출입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로봇과 함께 자라온 어린 아이들에게 사람의 고유성에 대한 환상이 전혀 없다. 이제는 모든 것이 결국 ‘정보’로 요약됨으로써 로봇이 전문적 지식 공급원이자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낭만적 반동에서 로봇시대의 실용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은 어떤 과정을 겪어 나감으로써 자아라는 것을 형성해 나간다고 여겨졌지만, (발달 심리학 전통에서는 이를 발달 단계마다의 과업을 수행해 나간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점차 모두 기술 안에서 해결하려 한다.

로봇을 친구로 여길 경우 제일 먼저 잃게 되는 것은 타자성, 즉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능력이다. 로봇과의 관계 맺기는 타인을 예비 부품으로서 자기 대상화하는 것 자체를 타당하게끔 만들고, 풍요로움에서 인간을 고립시킨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렇게 로봇에 의존한다는 것은 외로움을 가시게 해줄 위험 없는 존재, 요구 없는 교제에 익숙해 진다는 것이다. 사람을 의존하는 건 거부당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긴 하지만, 타인을 깊이 알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로봇과의 교제는 달콤한 거래로 보일지 모르나, 폐쇄된 세계에 우릴 들여 놓는다.


사진 출처: http://alonetogetherbook.com


저자의 표현처럼 기술은 ‘없는 것 보다 나은 상태에서 어떤 것 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서서히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대체해 나간다. 저자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단지 기술이 변화시킨 관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상처받기 쉬운 인간의 취약성을 감추는 방향으로 발전되는 기술과 그것이 야기할 수 있는 인간적 경험의 상실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로봇이 나올 때마다 기대를 높이고, 새로운 네트워크 기술이 인간의 행위 유도성에 더욱 적합해져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발전했다고 느낀다. 디지털 연결망과 로봇에 희망을 건다는 것은 기술 낙관주의가 지속됨을 의미한다. 다른 것들은 잘못되어도 과학은 올바른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야기할 수 있는 인간성과 인간관계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경계한다.

물론 아직까지 정보와 네트워크 사회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소셜 노믹스>에서 에릭 퀄먼Erik Qualman은 소셜 미디어가 ‘다중인격 사회의 몰락’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보았다. 데이터로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저장되는 디지털 기억이 사람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고, 정보의 흐름에 있어 투명성이 확대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회 전반이 투명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유발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실제로 투명화된 정보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확대 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있는 온라인의 형식적 특징들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될 위험에 대해서는 알지만 묵인한다.

이 책에 나타난 자기 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지는 문제들에 있어 디지털 원주민으로 표현되고 있는 아이들은 더욱 취약하다. 로봇과 함께 자란 아이들은 로봇의 우정이 사람을 거의 대체할 정도라는 생각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 있는 갈라파고스 거북이에 대해 실제가 오히려 로봇보다 현실감이 없다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살아있음’은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나 전화보다는 메시지를 편하게 생각하고, 시뮬레이션 공간 안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들 또한 ‘인간의 최소한의 불문율’에 대해 계속해서 언급한다는 점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거나 진심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처럼, 얼굴을 보고 해야만 ‘옳은 일’들이 있다는 생각은 계속해서 논쟁적인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몸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다고 여겨지던 것, 그리고 우리가 인간임을 증거해 주던 것들을 어디까지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해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술을 통해 대체되고 있는 ‘살아 있는 것의 존재’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목적은 이제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우리가 기술을 만들면, 그 다음에는 기술이 우리를 만든다’는 사실은 이러한 인간적 존재를 영위하기 위해서 기술의 가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숙고하게 만든다. 기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관계를 위해서 말이다.


출처

Turkel, S. (2008), Always-on/always-on-you: The tethered self, In Katz, J. Handbook of mobile communications and social change, Cambridge, MA: MIT Press, 121~137.

Turkle, S. (2010), Alone Together: Why we expect more from techonology and less from each other. 이은주 (역), 외로워지는 사람들, 서울: 청림출판

Qualman, E. (2011), Socialnomics: How social media transforms the way we live and do busin. inmD (역), 소셜노믹스, 의왕: 에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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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애